베넷세하우스에 이어 찾아간 나오시마의 지중미술관(아래사진같은 뷰는 절대 찍을 수 없다. 헬리콥터라도 타고 찍은건가... 디자인하우스에서 가져옴). 안도 타다오는 “인도의 아잔타, 돈황의 막고굴, 프랑스의 알타미라 등의 석굴에서 영감을 받았다. 특히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은 카파도키아의 동굴 주거이다. 일찍이 이슬람교의 탄압을 피해 그리스도교도들이 몸을 숨겨 생활했던 장소이다. 땅 속 깊이 들어가 복잡하게 나누어진 이 미궁 공간에서는 숨 쉬기를 포기하고 자신들의 삶을 땅 속에 맡긴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종교에 빠진 인간의 마음, 그런 삶을 가능케 하는 힘에 감동했다”라고 말했다. 건물 전체를 산속 지하에 교묘하게 감춰놓았기 때문에 밖에서 보면 이곳에 지중미술관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어렵다.
감춰진 건축.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을 따라다니다 보면 이런 감춰짐을 자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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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은 표파는 곳에서부터 금지되었다...-_- 지중미술관 입구.

그래도 카메라 들고 간게 억울해서 몰래 입구만 몇컷 찍어봤다.^_^

동굴로...동굴로...이어지는 길...

안도 타다오와 후쿠다케회장. 그들이 선택한 예술가 3인은 클로드 모네와 월터 데 마리아, 그리고 제임스 터렐이다. 아래 작품사진들은 디자인하우스에서.
모네의 '수련'은 위에서부터 쏟아내리는 자연채광(아마도?)이 눈부신 새하얀 방에 자리잡고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감상하는 이곳은 공간 자체가 압도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임스 터렐의 작품은 빛을 이용한 설치작품이었다. 역시나 신발을 벗고 들어가 감상하게 되는데, 약간의 안내도 받게 된다. 내용은 '신발을 벗고 천천히 한발짝씩 앞으로 걸어가세요. 삐-부저음이 들리면 멈춰서서 감상해주세요'이다. 아주매우대단히 난해한 작품...여튼 기분은 묘하다. 아래는 제임스 터렐의 또 다른 작품중 하나.

굉장하다. 월터 데 마리아(Walter de Maria).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듯한 성전같은 이 곳은 지름 2.2m의 커다란 구형 화강암이 가운데 놓여 있고 금박을 입힌 27개의 나무판이 배열되어 있다.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따라 작품의 느낌이 계속 변해간다.... 경외롭고도 아름다운...

> 관련 블로그_ 디자인하우스_ 물의 성전 지중미술관
디자인정글_ 건축의 전환, 그리고 도전 " less=" < 건축의 전환, 그리고 도전기 ">
건축은 전환되어가고 있다.
다양한 방면의 퓨전이 시도되고, 건축가가 옷을 디자인하고 패션디자이너가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시대가 바로 우리의 시대 디자인의 현주소이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절대적인 가치라는 것은 이제 종교의 영역에 국한 된 것이 뿐이다.
21세기의 디자인의 바다는 넓고 험난하다. 그리고 20세기의 몇몇의 선장에 의하여 길을 열어 놓은 바다는 이제는 미개척지가 없을 만큼 많은 부분이 열려 있다. 이제 앞서간 사람들이 열러 놓은 길을 우리가 하나로 이어 나가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중략...

ANDO TADAO의 지중 미술관은 입면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건축의 인상인 회색의 콘크리트 벽은 미술관에 들어 서기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ANDO TADAO답지 않는 건축일까? 최근의 건축의 흐름 중 단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LANDSCAPE ARCHITECT로 불려지는 건축의 분야일 것이다. LANDSCAPE ARCHITECT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경관설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최근의 흐름은, 그런 경관 계획으로만은 이야기가 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기본적으로 경관계획은 쉽게는 조경의 개념에 가깝지만 지금의 흐름은 그런 조경의 개념을 건축의 조형적인 의미로 풀어 보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ANDO TADAO의 지중 미술관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LANDSCAPE ARCHITECT의 의미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지만 ANDO TATAO 특유의 자연과 풍경에 대한 개념이 담겨 있는 작품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ANDO TADAO의 건축은 자폐적인 느낌과 동굴적인 느낌이 강하다. 막상 사진으로 바라보는 그의 건축과 실상 체험되는 그의 건축적인 이미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실제로 처험되는 공간에서는 자신의 무엇인가에 대한 저항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세계에 대한 몰입으로 표현되는 긴 침묵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 침묵의 이미지는 때로는 일본의 미학과 접목되어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미술관 전체는 ANDO TADAO 자신의 조형적인 언어인 입방체와 정삼각형의 형태는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 미술관 이전의 작품이 바라보는 것에 의한 조형의 이미지에 가까웠다고 한다면, 이 지중미술관에서는 체험되는 조형의 언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전체는 각각의 정삼각형, 정사각형의 선큰코트를 중심으로 엔트러스부분과 겔러리의 각 부분을 연결하는 연결통로로 구성되어있다. 전체적인 내부의 인상은 순수한 기하학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한 콘크리트의 보이드의 공간과 유연성을 가지는 연결통로의 부분과 공간의 질서를 잡아주는 선큰코트의 부분의 강한 회색의 이미지로 고착되어있다. 이 회색의 공간을 지상에서 떨어지는 빛에 의하여 명암을 구분하여 내고, 색의 추출로 인하여 콘크리트의 조형적인 언어를 건축가인 자신의 침묵의 언어로 만들어 내고 있다.
일본에 있어서 ANDO TADA는 독특한 위치를 가진다. 다른 여타 건축가들이 동경이라는 거대도시에 자신의 작업의 기반을 두고 할동하고 있는 반면, 안도다다오라는 건축가는 오사카라는 동경보다는 초라한 도시를 고집하고 있다. 그가 오사카에서의 작업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비판적인 지역주의의 입장에서의 모던이즘의 잃어버린 건축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자라왔고 자신이 고난을 격이고 연전연패를 경험한 곳을 사랑하고 있는 이유에서 일지 모른다. 또한, 그것을 가르쳐준 오사카라는 자신의 고향을 ANDO TADAO라는 건축가는 자신의 언어인 노출콘크리트로서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의 ANDO TADAO의 모습은 자신감에 차있다. 망설임 또한 그의 작품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항상 그의 공간은 고독하다. 무언가 얻으려고 하였지만 그것이 실현되지 않은 체로 끝나버리는 절망 같은 것이 녹아 있다. 이런 포장되어지지 않은 디자인이 지금의 일본디자인의 한 단면을 장식하는 한 디자이너의 모습이며, 우리시대의 디자인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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