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하고 있는 공공디자인 콜로퀴움.
정기용 선생님의 감동적인 강의...
하지만 글로 옮기려니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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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디자인과 마을회관
정기용
2008년 4월 16일 수 오전 10:00 홍문관 R511호
정은혜(석사 ’07)
1997년부터 지난 10년간 무주에서 30여 개의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한 건축가가 10년이 넘게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한 지역에서 진행한다는 것은, 사실 입찰이라는 시스템이 있는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여러 어려움 가운데 여기까지 왔다. 6월경에는 그에 관련된 책도 나올 예정이다. 공공디자인과 마을회관. ‘마을회관’이라는 것은 단순한 건축이 아닌 ‘사람’을 다루는 것이다. 마을이라는 것은 사람의 이야기로 결국 그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작하며
공동체, 그리고 부분과 전체
공동체라는 것은 ‘서로 다르지만 같이 몸을 이룬다’는 뜻으로 풀 수 있다. 몸이라는 것. 유기체이다. 유기체는 부분과 전체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다. 부분이 모여서 전체를 이루는 것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에 주목해야 한다. 공동체라는 단어 가운데 同이라는 글자에는 ‘집단기억’이라는 것이 있다. 같은 방향으로 가도록 지속가능하게 하는 무엇.
바로 산다고 하는 것은 단순한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우연이 아닌 필요성에 의하여 계속되는 반복 속에서 저절로 흔적이 생기고 길이 만들어진다. 모여 산다는 것은 일상사의 흔적을 계속해서 남기는 일이다. 나중에는 그것이 일상성이 되고 관습이 되며, 궁극적으로 문화가 되는 것이다. 즉 삶을 서로 공유할 때 비로소 문화가 된다. 그러했을 때 공동체가 생겨나고 공동성, 즉 모두가 인식하고 공유하는 것이 보다 증진되어 그 공동체는 확고해지게 된다.
사전이 가지고 있는 의미체계에 대해 연구한 그레마스(Greimas)라는 한 학자가 있다. 그의 이론 가운데 ‘의미의 사각형’이라는 것이 있다. 두 개의 키워드, 그리고 반대와 역. 이들을 설명하는 네 가지 종류의 관계가 생긴다. 하나를 정의하려면 그 네 가지를 모두 알아야만 한다. 예를 들면 도시, 비(非)도시, 농촌, 비(非)농촌. 이 관계를 알아야 ‘도시’와 ‘농촌’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사고를 통해 제한적 이해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다.
무주 프로젝트 소개
진도리 마을회관
무주라는 오지에서 시작한 첫 번째 일이다. 빈민공동체의 실천으로 유명하신 허병섭 목사님이 나에게 흙건축으로 마을회관하나 설계해달라고 하셨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흙건축과 그 곳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생각이 너무나 달랐다. 그들은 흙은 가난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마을회관에 대한 논의는 어려워졌다. 이후 흙건축의 견고함과 장점들을 이해하고서 다시 시행하기로 결정되었지만, 초기에 그런 어려움이 있었다.
처음 설계한 열린 형태의 마을회관은 지금은 초기와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며 주민들이 알아서 수리하고 바꿔나가고 있다. 이처럼 마을회관으로 인해 구심점이 생겼고 그것이 바로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성면 청사
안성면 청사를 위해 군수가 내게 주문한 것은 건축프로그램과 설계를 같이 하되 면민들을 위해 지어달라는 것이었다. 안성면 사람들을 위해 만드는 공간이므로 그곳 면민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면사무소보다 목욕탕이나 지어달라는 주민들의 말에 몸을 담글 수 있는 탕이 있는 공간을 생각했고 목욕탕과 보건소, 면사무소를 결합한 형태를 제안하게 되었다. 목욕탕으로 인해 면민들은 정보를 교환하며 교류하는 공간을 갖게 되었고, 최근에는 목욕탕을 늘려달라는 요구까지 생겼다.
부남면 청사
오지중의 오지마을인 부남면 청사를 의뢰받았다. 부남면 청사에는 두 개의 기존 건물이 있었는데, 구조적으로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태였다. 이것을 어떻게 집합체로 조직화하는가, 부분과 전체를 어떻게 어우러지게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다가 따로 노는 두 건물을 연결하는 매개체를 만들기로 했다. 그 매개체로서 천문대를 제안하였다. 별을 보러 온 사람들이 와서 이튿날까지 숙박하기도 하고 먹기도 한다. 마을에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을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안겨주게 되었다. 우리 마을에도 볼거리가 있다는 자부심. 천문대로 그것을 실현했다. 우리마을에 사는 것이 기쁘고 자랑스러울 수 있는 그런 자부심 또한 공공디자인에 있어 꼭 필요하다.
무주 공설운동장
주민들이 찾지 않는 무주의 공설운동장에 관객들이 시원하게 앉을 수 있도록 스탠드의 그늘을 만들기로 했다. 군수는 그늘을 드리우는 등나무를 생각하고 그것을 심기 시작했지만 지지할 기둥이 없어 뻗어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 허공을 허우적대는 등나무들에게 스탠드로 손을 내밀 수 있도록 마련했다. 등나무는 한 달여 만에 다 자라서 위를 뒤덮었고 일년 만에 멋진 등나무 스탠드가 완성되었다. 봄에는 등꽃향기가 진동하고 가을이 되면 낙엽으로 운치가 있는, 찾아가고 싶은 운동장이 되었다. 군수가 주민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면 이런 설계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문제는 한국땅에 있다. 모든 해결책도 한국땅에 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많이 찍어오고 공부하더라도 자라온 문화와 환경과 생활이 다르므로 똑같이 되지 않는다. 등나무는 잘 보살펴주면 사람을 천배 백배로 보살펴준다. 건축을 완성하고 디자인을 완성하는 것은 사람이자 식물이다.
무주군청 안마당
군청의 안마당에 크게 자리한 주차장. 자동차가 주인인 군청의 풍경을 바꾸기로 했다. 인간이 주인이 되는 군청을 만들고자 그 위에 녹지대를 만들었다. 나무와 유리 사이 통로를 만들고 이어서 사람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했다. 복도도 만들고 인터넷카페 등으로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다. 사람이 주인이 되는 곳으로 바꾼 것이다. 또한 등나무와 풀들을 심어 서로 다른 건물로 되어 있는 곳을 조화롭게 이뤄냈다.
마치며
의미 있는 그림일기
우리가 마을을 다루는 것은 마치 오래된 길을 찾는 일이다. 단순한 통로가 아닌 의미 깊은 그림이다. 길은 단순히 통로가 아닌 의미 있는 그림일기이다. 내가 여기 이 길에서 본 풍경은 우리 아버지와 우리 할아버지가 보았던 바로 그 풍경이다.
마을회관을 만든다는 것은 소통의 폭을 넓히는 일이며 거기에는 이런저런 난제들이 있다. 진정한 감흥으로 오는 것은 턱 괴고 고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건축가는 타인의 삶을 조직하는 것으로 설계한 건축물에 자신이 살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건축을 하는 일은 주변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그런 것에 따라서 없던 의미가 생길 수 있다. 그러기에 건축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 장소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마을 사람들이 원하는 것.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 많은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
파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반드시 많이 들어보라. 모든 문제는 파주에 있고 모든 해결도 파주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