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from text/daily 2008/06/18 03:09
오늘로 대학원 3차 수업이 다 끝났다.
별 무리없으면 학점은 다 이수할 듯...
적당히 하고 넘기자-했던 수업도 있었고,
잘해보고 싶었던 수업도 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의욕적으로 들은 수업만이 뒤에 꼭 남는 것 같지는 않다.
모르겠으나...왜그런지 작년때 들었던, 매번 헐레벌떡 들어간
5명의 학생이 모인 사진수업이 종종 생각난다.
노트북 한 대면 온갖 이미지를 편하게 볼 수 있는 시대에
매번 무거운 슬라이드 영사기를 준비하고.
와르르 쏟던 슬라이드 필름들. 하나씩 슬라이드판에 필름을 꽂던 소리.
영사기 돌아가던 소리. 철커덕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소리.
선생님의 조용한 목소리. 그런 것들이 생각난다.

이번에 한 수업조교일도 새로웠다.
사실 수업진행에 몰두하는 바람에 파주니 공공디자인이니...
본질적인 것을 깊이 생각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내게 주어진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가능하면 수업에 구멍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이때까지 느끼지 못했는데 그런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힘이 든다는 것도 알았다.
이때까지 누군가가 매번 그런 수고를 했으리라...

한학기 지난 지금 공공디자인이 뭘까 질문을 던져보면
그것은 '시스템'인 것 같다.
학생들이 찾은 해외사례들을 보며 나의 유일할만한(?) 일본생활을 종종 떠올렸는데...
예를 들면 버스정류장을 이야기할때 일본의 정류장을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정작 머릿 속에 그 '이미지'는 그다지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유를 생각해보니 사실 그 나라에서는 버스정류장에 머문 기억이 별로 없었다.
23분에 도착하는 버스는 반드시 그때 도착하고 떠나므로
10분거리인 우리집에서
15분을 두고 나올 때는 여유있게 걷고
5분을 두고 나올 땐 헐레벌떡 뛰었던 것 같다.
버스정류장은 버스를 기다리는 곳이라기보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포인트...라고 할까...
사람이 머물지 않으니
버스를 기다리며 낙서를 하거나 올라타거나 담배불로 지지거나 침을 뱉는 등
틈을 보이지 않아 깨끗하게 보존되는 효과도 있는 것 같고.

사람들이 제아무리 멋진 전광판에 잘 짜여진 노선도가 있는 정류장이라도
예측할 수 없는 버스를 전광판을 주시하며 기다리길 원할까
23분에 도착한다면 도착하고야마는 버스를 기다리길 원할까
좀 단적으로 든 예이지만.

이러면 디자인이 너무 무력해지나. 아니 그런 시스템이 진짜 '디자인'인가.

공공디자인은
이처럼 어렵기 때문에...

나는 아무래도 책만드는 일에 좀더 집중하는 편이 낫겠다.
종이 안의 세상도 나름 복잡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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