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출판현장에서 흔히 쓰는 '제본(製本)'이라는 말은 일본어에서 온 말이다. 우리나라식 표기로는 '제책(製冊)'이 맞다. 어디 제본뿐이겠는가. 하리꼬미, 베다, 돔보, 도지, 쓰나기, 보카시, 구와에, 돈땡, 아지로, 도무송, 싸바리, 등등등, 출판의 모든 현장에서 아직도 일본식 표기는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쓰이고 있다. 참고로 인쇄물의 생긴 모양대로 칼로 오려내는 것을 말하는 ‘도무송’이란 말은, 원래 그 기계를 발명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톰슨’이라 해야 맞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이 ‘톰슨’을 자기들 발음대로 ‘도무송’이라고 한 것을 우리도 아무 생각없이(?) 그대로 따라서 “도무송, 도무송” 하는 것이다. 문화를 생산하는 출판 분야에서 우리말 표기가 빨리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잠깐 언급해 봤다. 우리말 표기의 정착도 중요하지만, 제책의 종류와 그 구체적 공정에 대해 훤히 꿰는 게 출판실무자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책은 크게 나누어 보면 양장제책, 반양장제책, 무선제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양장제책에 대해 살펴보자. 양장은 쉽게 말하면 하드커버 책을 가리키는데, 크게 각(角)양장과 환(丸)양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양장은 말 그대로 책등(세나카)이 각이 잡힌 형태를 가리키며, 환양장은 책등의 모양이 둥근 것을 가리킨다. 환양장은 ‘환’을 일본어로 읽으면 ‘마루’이기 때문에 마루양장이라고도 한다. 각양장은 다시 미싱 각양장, 사철 각양장으로 나누어지며, 환양장은 다시 사철 환양장, 아지노 환양장으로 나누어진다. 앞에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긴 하지만 별것 아니다. 말 그대로 미싱은 미싱을 이용하여 꿰맨 것을 말하며, 사철(絲綴)은 실로 꿰맨 것을 가리키고, 아지노는 칼집을 낸 것을 가리킨다. 요컨대 접지 묶음을 실을 이용하여 꿰매느냐, 아니면 칼집을 내어 풀을 먹이느냐 하는 다양한 조합에 따라 각각 다른 이름이 붙게 되는 것이다. 양장제책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각양장의 경우, 미싱각양장과 사철각양장이 서로 접지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둘째, 반양장제책 방식이 있다. 반양장은 접지물을 실로 꿰맨 다음 표지를 양장에서 사용하는 합지(여러장의 종이를 겹쳐서 두껍게 만든 하드커버용 골판지)를 사용하지 않고 일반 무선책에서 사용하는 250g/㎡ 정도의 표지 용지를 부착해서 만든 책을 말한다. 쉽게 말해 양장제책 방식과 무선제책 방식을 반반 섞은 것으로 보면 된다.
셋째, 소프트양장 제책 방식이 있다. 본문은 실로 꿰매고 표지는 300g/㎡ 이상의 두꺼운 용지를 써서 합지 느낌이 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반양장에서 표지를 좀더 두꺼운 것을 썼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계절출판사의 ‘1318 브라보 시리즈’나 문학과지성사의 ‘문지아이들’ 같은 것이 이 경우에 속한다. 소프트양장에서 주의할 것을 합지를 대지 않고 두꺼운 종이를 썼기 때문에 자칫하면 책등의 모서리 부분이 터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넷째, 무선제책 방식이 있다. 무선(無線)은 무선철(無線綴)의 줄임말로, 말 그대로 실이나 철사 등 일체의 선(線)을 쓰지 않고 접착제만으로 제책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무선제책은 다시 일반무선 방식과 아지노무선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반무선은 모은 접지물의 등 부분을 2~3mm 정도 갈아낸 다음 강력 본드풀을 이용해 표지를 부착하는 제책 방식을 말한다. 아지노무선은 접지물의 등 부분을 갈아내지 않고 칼집을 낸 다음 풀을 먹여 표지와 부착하는 제책 방식을 말한다. 무선제본은 풀의 접착력에 문제가 있을 경우 책장이 잘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다만 일반무선의 경우는 책등을 갈아낸 상태에서 풀을 먹이기 때문에 떨어지게 되면 낱장이 떨어지며, 아지노무선의 경우는 접지된 상태에서 등에 칼집을 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떨어지게 되면 8페이지면 8페이지, 16페이지면 16페이지, 이런 식으로 통째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다섯째, 중철제책 방식이 있다. 중철(中綴)은 말 그대로 중앙에 철사박기를 한 제책 형태를 가리킨다. 주로 카탈로그, 팸플릿, 사보 등 쪽수가 얼마 안 나가는 인쇄물의 제본에 많이 쓰인다. 물론 잡지같이 두꺼운 책의 경우도 중철제책 방식을 종종 쓴다. 다만 두꺼운 책을 중철로 제책하면 접지가 밀리면서 안쪽 면이 바깥쪽 면보다 튀어나오기 때문에 다시 2차 재단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중철은 4쪽 단위로 터잡기를 해야 하는데, 앞의 각양장에서 언급한 미싱각양장도 중철과 같은 터잡기 방식을 취하고 있다. 중철에서는 책의 맨 앞이나 뒤, 그리고 본문 중간에 광고가 실릴 경우 재단선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이밖에도 PVC 링 제책, 트윈 링 제책, 고주파 제책, 입체책, 바인더 제책 등 여러 가지 제책 방식이 있다. 제작 담당자나 편집자가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제책 방식에 따라 필름 출력시 터잡기 방식이 각각 달라진다는 것이다.
제책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높은 품질의 결과물을 얻으려면 미리 가제본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기획단계 또는 재교지 단계에서 판형과 본문 쪽수가 대략 결정될 경우 본문 용지, 면지 용지, 코팅방식, 표지 용지, 커버 용지, 합지 등 제반 사항을 검토하여 견본책을 미리 만들어 활용하면 좋은 품질의 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 디자이너는 이를 바탕으로 정확한 책등의 두께를 계산할 수 있고, 편집자는 레이아웃된 교정지를 가제본에 부착해보면 판면에 대한 느낌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시리즈로 된 책의 경우 여러 권의 가제본을 제작하여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케이스 제작의 경우는 해당 권수만큼 가제본을 제작하여 케이스를 맞추면 몸에 꼭맞는 옷처럼 헐렁하지도 빡빡하지도 않은 좋은 품질의 케이스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특히 기획 단계에서 본문 분량을 얼마만큼으로 할지, 그리고 판형이나 용지는 어떤 걸로 선택할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는 경우, 2~3개의 샘플 가제본을 만들어 보면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간혹 가제본을 만들어 주지 않거나 돈을 받고 만들어주는 제책업체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거래관행이다. 제책업체에 가제본을 의뢰하는 것은 그 회사에서 그 책을 만들겠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것일 뿐 아니라, 나중에 해당 제책업체가 그 책을 제책할 때도 사전에 가제본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가제본은 출판사에만 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제책업체에도 득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주의해야 할 것은 가제본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출판사는 제책업체에 이 사실을 정확하게 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편집자든 디자이너든 출판을 하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정확하게 배우고 알아야 할 것은 제책이다. 제책의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획이라 하더라도 그 결과가 만족스러운 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기획편집자에게는 하나의 원고를 받고 처음 떠오르는 책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 모습대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너무나 복잡해서 마치 지뢰밭을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허나 제책을 알고 있는 기획편집자는 그 지뢰밭을 쉽게 피해 갈 수 있다. 필자가 사계절출판사에 근무할 당시, 필자가 진행하고 있는 책은 빨리 출간되고 다른 책은 출간이 늦다고 항의를 받은 적이 간혹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다. 필자가 제작의 흐름과 제책방식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잘 알고 있었을 뿐이다.
SBI 출판입문자 과정에서 제작에 대해 강의하면서 편집기획자에게는 내부적 또는 외부적 커뮤니케이션과 출판제책의 종류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떤 제책 방식을 쓸 것이냐에 따라 용지, 출력방식, 부속물 등 모든 것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을 정리해 보면 그 동안 우리는 제책에 대한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이해없이, 즉 사전적으로 기획되고 결정된 제책에 대한 큰 틀 속에서 인쇄방식이나 용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눈앞에 닥쳐 있는 공정을 쫒아다니면서 사후적으로 제책방식을 결정하는 우를 범해 왔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 공정인 제책에서 사고도 많이 나고, 경쟁사와 차별화도 잘 안되는 고만고만한(?) 책을 만들어 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제책, 출판의 시작이자 끝입니다요.” 이렇게 표현해도 될려나?
박찬수(한림출판사 기획편집부 총괄, sbi 출판제작과정 책임교수)
하리꼬미, 오리꼬미, 베다, 돔보, 도지, 쓰나기, 보카시, 구와에, 돈땡, 아지로, 도무송, 싸바리, 누끼, 아미, 하시라, 오시, 야리지, 세네카, 고바리, 소부, 도비라......
이걸 언제 다 고쳐잡지?